위 그림은 갤럭시 노트 22 울트라의 펜으로, '스캐치북'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그렸습니다. 그린 지 꽤 된 그림이구요.
세상에는 수많은 동물이 있습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저는 동물이 등장하는 생물학 백과사전과 동물이 등장하는 동화, 소설들을 읽으면서 수많은 동물들을 접했죠. 집이 좁아 동물을 키울 엄두도 내지 못 했던 부모님은 집 근처에 있는 동물원에 자주 데려다 주셨는데 그곳에서 살아 있는 많은 동물들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아이가 동물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집 TV에는 동물의 왕국이나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같은 프로그램이 항상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국내 존재하는 동물부터 아프리카를 뛰노는 동물들까지, 초식동물부터 맹수들까지 많은 동물들을 지켜봤습니다.
근데 왜 그 많은 동물들 중에서 하필 '말'이었을까요. 왜 작은 아이는 작은 TV에 담긴 '말'이라는 동물 하나에 꽂혀 말만 보면 환장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대체 다른 동물에게 없는 어떤 매력이 있길래?
사람과 오랜 시간 함께한 동물
인간이 말을 본격적으로 타고 다니기 시작한 기원전 3000년 전부터 20세기 초반 무렵까지, 말은 무려 5000년 가까이 인간들 곁에서 가장 중요한 육상 교통수단으로 함께 해 왔습니다. 차나 기차 등이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은 인간이 타고 다닐 수 있는 가축 중에서 가장 빠르고 오래 잘 달리며, 마차나 짐수레를 통해 많은 양의 물자와 인구를 수송할 수 있는 동물이었죠. 인간과 가장 오래 함께한 동물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아니 근데 그도 그럴 것이. 말의 신체 구조를 보자면 정말 올라타고 싶게 생기지 않았나요? 마치 타고 다니라고 진화한 것처럼요. 우리 옛 조상도 들판을 달리는 말을 볼 때마다 타고 싶어 안달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달리기도 힘도 형편없는 인간들은 저 아름답고 빠르며 힘도 센 짐승을 길들일 수 있다면 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란 걸 알았을 겁니다.
근데 말들도 사실 인간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 커다란 몸과 예민한 성격에 강력한 발굽으로 인간을 가만히 놔 뒀을까요? 인간의 끈질기고 끈질긴 구애에 말들의 조상도 승복한 것이 아닐지요. 말과 사람은 어쩌면 이렇게 '서로를 선택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나치게 인간중심적인 관점이긴 하지만요. 이건 어쩌면 인간과 말의 아주 오래된 사랑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때로 이기적이죠.
복종하기보다 협조하는 동물
말은 지능이 높은 편에 속합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대략 6살 정도의 지능을 보유하고 있죠. 사람과의 유대는 물론 사람처럼 여러 동물들과 유대가 가능한 동물입니다. 학습 능력이 매우 뛰어나서 마장마술이나 비월장애물, 폴로 등 다양한 스포츠에 이용되기도 하고요. 서커스에 이용되기도 합니다.
사람의 강제가 개입된 훈련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말의 의지가 없다면 이 또한 사실 불가능에 가까울 겁니다. 굽을 가진 유제류들이 좀 그래요. 소도, 양도, 염소도 한 고집들 하죠. 말도 그렇습니다. 한 고집 하거든요. 철인5종경기 중 하나인 승마 때 아무리 신호를 줘도 말이 꿈쩍도 하지 않아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처럼요. 크고 힘 센 말이 하지 않으려 하면 사람이 아무리 다그친들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그 커다란 몸을 움직여, 작은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에 힘껏 협조해 주는 그 사려깊음이 절 반하게 합니다.
아주 오랜 세월 인간과 긴 시간 함께 해 온 동물의 특성대로 사람의 눈치를 읽는 능력 또한 굉장히 뛰어난데요. 동물을 다루는 프로그램에도 종종 등장하죠. 일하기 싫어 드러누워버리는 말이라든지.
말과 함께 촬영한 배우들의 증언들이 속속 방송에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말은 '방송'이라는 것의 개념을 이해하고 장면의 미장센을 챙기기도 하거든요. 영화에서 전쟁의 선봉에 선 장군이 연설할 때 앞발을 높이 들어 일어서며 뜻밖에 명장면을 만들어 내는가 하면, 배우 정우성이 영화 놈놈놈을 위해 입양한 말은 촬영 내내 고삐를 잡지 않아도 정우성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고 하죠. 잘생긴 사람을 특히 좋아해서 옆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고, 주인공을 태운 말은 특히나 더 목을 들어올리며 으시대거나. 시극에서 말 여러마리를 몰고 촬영하던 씬 중 NG가 나면 누가 NG를 냈는지 말들이 두리번거리면서 찾더라는 증언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경주마의 경우는 경주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경주에서 승리한 뒤 자신이 이겼음을 알고 기뻐하는 말들도 있구요. 특출나게 지능이 높은 녀석들은 경마의 전략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을 넘어서 기수의 지시와 스스로의 페이스를 모두 고려해서 경주를 하며, 승리를 위해 기수의 판단을 거부하고 자신의 페이스를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신참 기수에게 자신의 전략을 알려준다거나, 큰 경기 전에 미리 다이어트를 해 둔다거나, 경기 전 퍼포먼스를 하며 관중의 시선을 즐긴다거나, 경주에서 실수해 패배하면 울거나 패악을 부리는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죠.
자신과 함께하는 인간의 감정을 읽는 데에도 뛰어납니다. 사람을 태우는 동물인 만큼 자신을 탄 사람이 초보인지 베테랑인지 알 수 있는 것은 당연하고요. 어떤 기분으로 자신을 대하는지에 따라서도 말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집니다. 이건 제가 직접 경험한 것인데요. 승마를 배우러 다녔을 때 항상 아끼는 말을 똑같이 탔는데도 어느 기분 좋지 않았던 날 평소와 달리 유난히 말을 듣지 않고 심지어 앞발을 들고 일어났던 날이 있었죠. 좋지 않은 기분 때문에 손에 쥔 고삐에도 감정이 들어간 것이고 이 감정이 말의 기분까지 상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한참 사과하면서 쓰다듬고 나서야 풀리더군요.
사람이 연구대상이라면 말은 인류학의 석사학위쯤은 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오래 함께하기도 했고요. 이런 말을 움직이는 건 사람의 신뢰와 믿음, 정확한 의사 전달이죠.
가장 아름답게 진화한 동물
사실 이것도 저것도 다 그저 핑계를 찾으려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랑에 빠진 건 정말 단 한 순간이었거든요. 갈기와 꼬리털을 휘날리며 장애물을 뛰어넘는 그 순간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였을 때. 저렇게 완벽하게 아름다운 생물이 또 있을까 싶었던 그 순간이 말을 사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오스카와일드라는 예술가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데에는 그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 비슷한 말을 했던 것도 같네요. 저는 말처럼 완벽하게 균형 있고 아름다운 생물을 지금껏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을 그리는 것만으로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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