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말'이라는 동물을 정말 매우 많이 좋아합니다.
좋아한다는 표현을 넘어 사랑해마지않는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죠.
무엇이 말을 그렇게 좋아하도록 만들었을까 기억을 거슬러 가 보니 반지하 단칸방에 자리한 작은 TV 하나가 떠오릅니다. 그 당시에는 브라운관 뚱뚱한 TV였는데요. 승마 중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과 말이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비월장애물 경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말이 날개도 없이 새처럼 날고 있었고 사람은 그 위에서 중량이 없는 것처럼 혹은 말과 애당초 한 몸이었던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죠.
제 키만한 장애물을 망설임 없이 달려 뛰어넘는 모습을 넋을 놓고 지켜보고 있었던 기억은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그때가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이었는데요.
그맘때쯤 장래희망은 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왜 내 다리는 말처럼 네 개가 아니라서 뜨그덕 뜨그덕 달릴 수 없는 걸까 고민하던 시절이었죠.
다른 아이들이 처음 유치원에서 무슨 그림을 그렸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는 말부터 그렸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있는 스케치북을 넘어, 아무 데나 펜과 종이만 있으면 끊임없이 말을 그려대는 데에 열중했습니다.
4계절이 대략 40번 가까이 흘러갈 때까지 말만 그려댔는데 성취가 그렇게 뛰어나다고는 못 하겠습니다만, 멍하게 있다 보면 어느 새 종이 위에 말 한 마리가 어디론가 달리고 있거나, 웅크리고 자고 있거나, 서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곤 합니다.
이 말은 때로 그린 사람의 심경을 대변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 그린 말은 살이 통통하게 쪄 있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의 말은 힘없이 주저앉아 있기도 합니다. 화가 났을 때는 발길질을 하고 맘이 안 좋을 때는 멍하니 풀이나 뜯고 있습니다.
처음 TV의 작은 브라운관을 통해 말을 접했을 때 맘 안에 말 한 마리를 키우게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 말은 아주 집요하고 끈질기게 저와 함께 자라났습니다. 그림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형태로 제 삶과 함께 했죠.
때로는 그림으로. 때로는 스포츠이자 취미로. 때로는 춤으로. 그리고 생활 속 아주 깊이 자리했습니다.
멍때리면 하나씩 생겨나는 말 그림들과 함께, 이 이야기를 차근차근 하나씩 꺼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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