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_말의 영혼으로 살기

[취미] 말의 영혼으로 살기 04. 말을 탄다는 것

your_text 2024. 3. 9.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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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샤프로 그린 그림입니다. 웬일로 입과 코와 눈을 그리고 싶었나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눈동자가 없네요(...) 화마점정은 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말을 그림으로만 그리는 것에서 참기 힘들어진 아이는 말을 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 사진을 찾아 보면 말을 타고 찍은 사진이 종종 있어요. 말을 탈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무슨 수를 써서든 타려고 했거든요.
 
놀이공원에서 말 타기 체험이 있으면 반드시 타자고 졸랐습니다. 웬 바다에 말을 타고 사진을 찍는 이벤트가 벌어지면 부모님의 손을 잡아 끌었구요. 마이산에 들렀다가 말을 탈 수 있는 코스가 있길래 또 손을 잡아 끌었습니다. 말만 보이면 타고 싶어 안달을 했었죠.
 
쫌쫌다리 말을 탈 기회를 노리다가, 성인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본격적으로 승마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죠. '호스피아'라는 사이트에 당시 '전국민 말타기 운동'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승마'라는 운동이 돈 많이 드는 고급 스포츠라는 선입견을 깨고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기승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전국 몇몇 선정 승마장에서 반값 정도에 승마를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지원사업입니다. 이 사업에 신청했더랬죠.
 

 

힐링승마 지원사업 안내_힐링승마 지원사업_승마

말(馬)이 주도하는 기관 대표 사회공헌사업, 국민 모두가 함께 즐기는 승마 승마가 ‘돈이 많이 드는 고급 스포츠’라는 일반적인 선입견을 깨고 좀 좀 더 많은 사회적 약자와 국민들이 쉽게 일

www.horsepia.com

(지금은 아직 신청기간이 아닙니다. 봄이 완연해지면 신청을 받게 될 것 같네요.)
 
선정되었을 때 매우 기뻤습니다. 드디어 승마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요. 당일날 지정된 승마장에 저를 비롯해 승마를 처음 접해 보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장비도 채 갖춰져 있지 않고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이었죠.
 
시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원형마장을 비잉 둘러서, 너무 높지 않은 포니부터 타기 시작했는데요. 말만 보면 타고 싶어하던 성질대로 이래저래 올라 타 봤기 때문에 높은 곳에 올라타는 것에는 애당초 겁이 없었습니다. 초보이되 이미 초보의 마인드는 아니었죠.
 
승마의 시작과 끝은 평보입니다. 걷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저는 승마를 하기 전부터도 이미 평보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말 안장 위에 올라갈 때는 말의 왼편에 나란히 서서 왼발을 먼저 끼우고 말총과 안장 뒤쪽을 잡고 한 번에 올라타야 한다는 것. 안장에 앉을 때에는 앞으로 바짝 당겨 앉아야 한다는 것. 허벅지와 종아리를 말 배에 착 붙이고 등자에는 발의 1/3만 들어가게 넣고서 발등을 내리고 앞꿈치쪽으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무릎 앞쪽과 발끝이 세로 일직선상에 있어 그 상태로 벌떡 일어나더라도 무게중심이 한 곳에 쏠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일어날 때는 무릎이 아닌 허벅지 힘으로 일어나야 하며 신호는 발 뒤꿈치로 발의 배를 툭 건드리며 주고, 말의 입과 연결된 고삐는 가운데 세 손가락으로 쥐고 엄지와 새끼손가락 사이로 꽉 끼어 빠지지 않도록 할 것. 등등. 이것은 승마를 정식으로 배우기 전 이미 이래저래 찾아보며 알고 있던 부분이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타는 것에서 1차 당혹스럽고 그 높은 곳이 움직인다는 것에 2차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 틈에서 웬 젊은 처자가 맑은 눈의 광기로 이러고 말을 타고 있으니 강사 분들은 얼마나 웃겼을까요. 정말 승마를 처음 배우시는 것이 맞냐는 말을 다섯 번은 들은 듯합니다.
 
말이 걸을 때는 그냥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리듬이 있습니다. 오른쪽 뒷발이 나가면 이어서 오른쪽 앞발이 나가고, 왼쪽 뒷발이 나가면 그 다음에 곧바로 왼쪽 앞발이 나갑니다. 그러면서 몸의 움직임을 보조하기 위해 머리가 8자로 자연스럽게 흔들리죠. 하체로 이 움직임을 마치 훌라춤을 추듯 그대로 따라 흡수하며 상체의 흔들림을 최대한 안정시켜 주면 말은 조금 더 안정적이고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위에 앉은 짐(!)이 떨어질 염려를 안 해도 되거든요. 베테랑 기승자들은 본격적으로 말을 타기 전 평보로 말과 스스로의 몸을 풀면서 교감을 높이곤 합니다.
 
본격 승마가 처음이었던 저는 이 말의 움직임을 신비로워하면서 리듬을 익히는 데에 온 집중력을 쏟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기수들은 이런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는구나.
 
모두가 평보를 끝내고 체험으로 속보(가볍게 두 박자로 뛰는 걸음)를 한 다음 엉덩이를 아파하며 내려왔을 때 강사님이 '회원님은 경속보를 해 보자'고 하더군요. 금방 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요. 경속보는 말이 두 박자로 가볍게 뛰어 움직일 시에 기승자가 말 등 위에서 엉덩이를 들었다가 놓았다가 하며 반동을 흡수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죠. 일어나려 하면 눌러앉혀졌고 앉으려 하면 엉덩이를 쳐 던져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말의 리듬을 모르니 안장 위에서 통통 튈 뿐이었죠. 머리는 정신 없이 흔들리고 엉덩이는 아프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저를 잡은 건 '그렇게 리듬이 안 맞으면 말이 허리를 다쳐요' 라는 말이었습니다.
 
다치지 말아야죠. 말도 나도. 의지할 것은 말 뿐이었습니다. 서로 다치기는 싫을 테니까요. 말이 몸을 던져 주는 느낌을 그대로 받아 일어나고, 허리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앉아 주니 말이 또 박자에 맞춰 몸을 받아 던져 줍니다. '어' 하는 순간이 옵니다.
 
어떻게 박자를 맞춰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몸이 알아챔과 동시에 강사님의 '그렇지!' 하는 소리가 들리고, 동시에 말도 이 정도면 됐다 싶었는지 걸음이 빨라지던 순간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요. 처음으로 첫날에 평보와 경속보를 마스터한 회원이 되었습니다.
 
 환희는 있었지만 대가는 쓰라렸습니다. 승마를 처음 배워 본 분이라면 첫 기승 후 화장실을 갈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마 아실 텐데요. 비명을 지르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엉덩이로 타는 승마의 고통은 생각보다 적지 않거든요.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말과의 교감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전 제가 바라던 것이 이런 교감일 줄만 알았습니다.
이때까지는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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