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_말의 영혼으로 살기

[취미] 말의 영혼으로 살기 06. 말과 나의 이야기

your_text 2024. 3. 1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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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노트22울트라입니다

 

낙마로 다친 꼬리뼈를 치유하며 할 수 있는 건 앉아서 일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걷는 것이야 문제 없었지만 운동은 엄두도 못 냈죠. 말발굽소리와 시원하게 달리던 속도감을 그리워하던 중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이유 씨가 말을 타고 있더라구요.

 

 

아니 이게 뭐지........+ㅅ+....

 

말과 나의 이야기 앨리샤 광고 촬영 현장 - 아이유

 

 

OST 가사도 너무 좋은 것이었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이 펼쳐진 세계로 달려 봐요'
'멈춰서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나요, 포기하지 않지 않게 그대 곁에 있어 줄게요'

 

게임사 엔트리브에서 개발한 승마게임이었습니다. 이름하여 '말과 나의 이야기, 앨리샤'. PC게임입니다.

안타깝게도 2014년 종료되었습니다만 운영되고 있는 동안 제 삶의 굉장한 활력소가 되어 준 게임입니다.(지금은 프리서버로 운영되고 있는 모양이네요.) 

 

'경마' 즉 말의 우승에 상금을 거는 사행성 도박 같은 것이 아니라 '경주 게임'에 가깝습니다. 별명이 '말트라이더'였죠. 말을 타고 하는 카트라이더라고요.

 

그냥 무작정 달리기만 하는 게임도 아니었습니다.

말이 좋아하는 먹이를 체크해서 때가 되면 먹이를 줘야 하고,

더러워지지 않게 털도 빗겨 줘야 합니다.

몸과 갈기와 꼬리를 따로따로 빗어야 하죠.

다치면 치료도 해 줘야 합니다.

 

치료 방법도 다친 것에 따라 달라요. 베었으면 드레싱을. 뼈가 다쳤으면 파스를. 굽이 다쳤으면 뭔가 발라줘야 하죠.

기분이 좋도록 놀아주기도 해야 하구요.

>ㅂ<!!!!!!!!

 

승마인 만큼 올라타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말 자체에 비중을 더 많이 둔 게임이었습니다. 올라탄 사람의 의상만큼 말의 장비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구요. 말 움직임 구현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지 만족스럽지 못 했던 그간의 게임들과 달리 말들의 움직임도 정말 훌륭했습니다. 연구를 많이 한 티가 나는 게임이었다고 할까요.

 

달리는 필드도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경주를 한다기보다 경치 좋은 곳을 여럿이서 마음껏 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았죠. BGM의 퀄리티도 높았고, 효과음도 어마무시했습니다.

 

나를 위한 게임이 나왔다 싶었답니다.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 본 바 BGM은 DJMAX 시리즈 등지에서 활약한 사운드 디렉터 Supbaby(슈퍼꼬마)를 비롯한 여럿 유명 아티스트들, 외국 출신의 가수가 제작에 참여해서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게임음악이라고 믿기 힘들정도의 음악성과 퀄리티를 보여줬죠. 위의 가수 아이유가 부른 OST 퀄리티만 들어 봐도 정말 상쾌하지 않습니까!

 

심지어 이곳의 말은 날기까지 합니다. 글라이딩이 가능하죠. 날개를 펼치고서 날아 내려가는 기분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현재 나와 있는 게임들의 비행 기능들을 아무리 해 본들 이 게임의 글라이딩 만큼의 쾌감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일반 레이싱 모드가 있고 아이템 모드가 있는데요. 레이싱 모드는 필드를 그저 달리고 장애물을 넘으며 달려 먼저 도착하는 말이 상금을 타갑니다.

 

박차라는 시스템이 있는데요. 장애물을 하나 뛰어넘을 때마다 박차 게이지가 차오르고 이것을 전략적으로 연계하면 박차를 여러 번 부스팅할 수도 있습니다. 직선거리에서 말타기로 '제로의 영역'을 경험할 수 있어요...

 

아이템모드는 말 그대로 아이템전입니다. 상대를 방해하기 위해 다양한 난리법석을 떨게 됩니다. 상대방의 눈을 가리거나. 앞에 얼음벽을 설치하거나. 상대 발목에 체인을 걸거나. 벼락을 때리거나.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늘 꼴찌였죠.

 

 

이 게임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는데, 제가 사람이 아니라 말에 몰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람에 몰입했으면 타고 있는 말에 좀 미안했을 수도 있는데 말에 몰입하니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일부 유저들은 일상에서도 사람이 말에서 내리지 못 한다는 것을 굉장히 답답해 했는데요. 저는 말이 본체이다 보니 사람을 펫처럼 등에 얹고 다니는 것이 나쁘지 않더라구요. 이런 감각들이 재미있었습니다.

 

뜻밖에 이 게임에서 말이 되어서 사람을 태우고는, 사람과 함께 멋진 세상을 달리고 날며 호흡을 맞추는 꿈 같은 일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죠. 게임의 선순환이라고나 할까요.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을 게임은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다시 한 번 깨달았죠. 이 만족감은 그저 누구를 '태운다'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환희와 가까울 정도의 만족감은 '돕는다'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와 긴밀히 호흡을 맞춰'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그 목표를 향해 함께 노력해서' '성과를 내는 것'에 저는 카타르시스에 가까운 환희와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현실이 아닌 아름다운 게임 세상에서 저의 정체성을 그제야 제대로 깨닫게 된 것이었죠.  

 

내게는 초등학교 때부터 갈고 닦아 온 '글'이라는 네 다리와 발굽이 있습니다. 아주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법 맛깔나게 쓸 줄 압니다. 상상력도 풍부하고 이야기도 제법 만들 줄 압니다. 편식이 심했더라도 책을 제법 읽었거든요. 보는 시야도 좀 됩니다. 남다르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애당초 '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아이에게 평범이란 게 있을 수 없습니다.

 

자. 나라는 생물은 이제 여기에 누구를 태우고 어떻게 달릴 수 있을까요.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그 시작은, 가장 가까운 '회사'였습니다. 내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 나의 등을 내 줄 것인가'에 대한 또다른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왼쪽 뒷 발굽 하나가 없어서 하나 그려줍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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