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이야기

[공연이야기] 눈이 오면 생각나는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your_text 2024. 2. 2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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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눈이 그쳤습니다. 드디어.

 

요 며칠째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눈과 비가 동시에 쏟아지거나.

그러고 있었지요.

 

날씨감별사인 온 몸이 눈 오고 비 온다고 아주 난리법석을 떨었더랬습니다.

 

다들 괜찮으신지요

 

살아남으셨습니까.

 

나만 아퍼!?

 

손가락 마디가 쑤시는 가운데서도 흐린 하늘이 설렜던 건, 그렇게 눈이 올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무대와, 귓가에 저절로 흐르는 음악이 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소극장 뮤지컬을 좋아해서 자주 보러 다녔더니 머릿속에 항상 음악들이 흐르는 것 같아요.

 

눈이 오는 날을 설레게 하는 뮤지컬 하나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당신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의 여행"

 

눈이 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입니다. 브라이언 힐(Brian Hill) 극본, 닐 바트람(Neil Bartram) 작사·작곡의 뮤지컬이구요. 2006년 캐나다에서 초연되었는데 2007년 두 번의 트라이아웃과 2008년 뉴욕에서의 트라이아웃 이후, 2009년 3월 브로드웨이에 진출했죠. 우리 나라에는 OD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이 극을 매우 사랑하여 우리 나라로 들여와 2010년 성황리에 초연을 마쳤고 바로 얼마전, 2024년 2월 18일 제칠연을 마쳤습니다.

 

시놉시스 : 

영화 <It's a wonderful life>에 나오는 천사 클라렌스 복장을 하고 나타난 토마스와 헤어롤을 돌돌 말아 올린 채 죽은 엄마의 가운을 걸친 앨빈. 그들은 그렇게 7살 할로윈 파티에서 처음 만났다.
아버지의 서점을 물려받아 고향을 떠날 생각이 없는 앨빈과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토마스.
대학 원서를 쓰다 글 문이 막혀버린 그는 앨빈에게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앨빈은 토마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토마스는 앨빈의 조언에 마법처럼 글이 써진다.
대학에 입학한 토마스는 점점 세상에 물들어간다. 어린 티를 벗고 약혼한 애인도 있다.
하지만 앨빈은 사는 곳도, 하는 일도, 그리고 사차원적인 행동도 모두 어린 시절 그대로이다.
토마스에게 그런 앨빈은 더 이상 소중하지 않았고 점점 둘은 멀어져 간다.
토마스는 대학 졸업 뒤 많은 책들을 내고 세상에서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깨닫지 못했다.
그가 쓴 모든 글의 영감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 앨빈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줄거리 : 

베스트셀러 작가 토마스위버가 등장해 단상 앞에 섭니다. 경황이 없어 보이죠. 그는 오랜 친구 앨빈 켈비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의 시골 마을으로 황급히 돌아온 참입니다. 그가 죽은 지는 1주일이 된 모양이구요.(1주일 전 사망했다고 들어서 돌아온 건지, 사망했다고 들어서 돌아온 지 1주일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하얀 눈이 내리고, 강이 꽁꽁 얼어붙을 만큼 추운 날이었죠.

토마스가 마을로 돌아온 이유는 이 친구의 송덕문을 써 장례식장에서 낭독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약속했거든요. 누가 먼저 죽든 상대방이 죽었을 때 남은 사람이 송덕문을 써 주기로요.

 

하지만 톰은 아주 오랫동안 슬럼프 속에서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송덕문을 쓰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잘 안 되죠. 종이 여러 장이 희생됩니다. 그러면서 그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헤어진 시점까지의 기억들을 찬찬히 떠올려 봅니다.

 

이 기억들을 빼곡히 꽂아 놓은 기억의 도서관 속에서, 톰은 기억 속 앨빈과 함께 '앨빈을 떠나보내게 만든 작은 틈새'를 찾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바로 이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주된 내용이죠.

 

작은 도서관을 옮겨 놓은 듯한 무대

 

기억을 저렇게 책처럼 빼곡하게 꽂아 놓은 것 좀 봐요. 저게 저게 다 토마스 위버의 기억입니다. 누가 책 쓰는 사람 아니랄까봐서요. 토마스는 1층에 책방이 있는 집 윗층에 사는 아이 앨빈의 친구로서 앨빈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책방에서 주로 놀곤 했었는데요. 여기서 앨빈이 선물해 준 책 '톰 소여의 모험'을 읽고 소설가의 꿈을 꾼 토마스는 결국 동화 작가가 됩니다. 그의 기억 속 이 작은 도서관은 앨빈네 책방과 비슷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무대가 드라마틱하게 변하거나 하진 않지만, 이 책방의 색깔 온도가 변화하거나, 창 밖의 색깔이 변하거나, 어딘가를 조명으로 비추거나 하면서 극의 내용을 충분히 북돋워 주는 또 하나의 주인공 역할을 합니다.

 

 

배우 두 명이 가득 채우는 공연

 

이 뮤지컬은 '토마스 위버(톰)'와 '앨빈 켈비(앨빈)' 두 사람이 이끌어 가는 이야기입니다. 톰이 앨빈과의 기억을 되짚어 보는데 기억 속 앨빈이 마치 살아있는 친구처럼 그의 기억 속 여행을 도와주죠. 이 여행은 마치 책장을 이리저리 펼치고 또 되돌아가듯 앞 뒤로 오가거나, 건너뛰거나 하기도 합니다. 굉장히 드라마틱한 감정들을 담고 있지만 그것들을 시간을 거슬려 표현해 주는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큰 볼꺼리였죠. 특히 7살 무렵의 연기부터 30대 후반 혹은 40대가 됐을 때까지의 나이를 보여주는 연기가 매우 좋았습니다.

이번 7연에서는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큰 활약을 하고 있는 배우 최재웅 씨도 처음 참여해 관심을 모았고, 그러면서도 여러 번 작품에 참여할 것처럼 능숙한 연기를 펼쳐 주어서 사랑을 받았더랬죠.

거기에 내내 앨빈으로 참여했다가 이번 시즌 토마스 위버로 참여하게 된 이창용 배우도 화제였습니다. 앨빈 캐릭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토마스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를 많이 모았었거든요. 기대 이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구요.

초연부터 7연까지 톰 역할을 맡아 온 조성윤 배우는 시간만큼이나 더 깊어진 연기로 극찬을 받았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앨빈 역의 김종구 배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앨빈이었습니다. 깊은 감정을 바탕으로 연기해 주어서 매번 눈물 마를 날이 없었더랬죠.

이번 시즌 앨빈으로서 처음으로 참여한 신재범 배우와 정욱진 배우도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신재범 배우는 대본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와 스터디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의 앨빈을 선보여 줬고, 정욱진 배우 역시 그가 갖고 있는 특유의 밝고 화창한 가운데서도 아린 아픔을 가진 그만의 앨빈을 보여주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정, 혹은...

 

이 극은 오랜 친구 사이의 오래된 기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친구와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을 꺼내보는 이야기고, 그것들 사이에 이들의 사이를 갈라 놓기 시작한 작은 틈새가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앨빈을 떠나게 만들었는지 찾기 위해 기억 속을 뒤적이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며 톰은 앨빈이 보여주었던 우정, 톰에게 청했던 도움들, 보여주었던 표정, 했던 말들을 세세하게 떠올리게 되죠. 이 기억은 과연 그가 기억하는 것 그대로일까요? 시간이 지나 미화되거나 변질된 것은 아닐까요? 그때 그 말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스쳐가던 그 슬픈 눈은 무슨 의미였을까요? 톰은 자신이 그냥 흘려보냈던 작은 신호들을 다시금 의식하게 됩니다. 하지만 거기에 정답이 과연 있을까요? 무슨 의미였는지 물어볼 당사자는 이미 이 세상에 없습니다.

 

아름다운 음악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음악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클라리넷 세 악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거기에 배우의 목소리만 더해져 훌륭한 노래들이 탄생합니다. 음악도 배우의 연기에 따라 호흡을 기다리기도 하고, 익살을 부리기도 하고, 배우의 목소리를 뒤따라 똑같이 연주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또다른 역할로서 자리합니다.

어떤 뮤지컬이라도 각자 그 작품만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라는 작품은 소재와 무대가 주는 포근하고 따뜻한 분위기에 걸맞게 근대 서양의 음악과 같은 고전미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낯설고도 사랑스럽죠.

 

 

눈처럼 흩날리는 종이들

 

이 극의 백미는 극의 클라이막스에서 볼 수 있는 눈송이들입니다. 두 배우가 무대 위에서 기억들을 열람하며 온갖 종이들을 날려대는데요. 무대 바닥에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종이들이 수북히 쌓여 갑니다. 그러다가 한겨울 같이 놀던 기억을 떠올리는 클라이막스에 톰과 앨빈이 종이 한 무더기씩을 위로 던져올리면, 그것이 무대 꼭대기에서부터 폭죽처럼 흩날리면서 하얀 눈가루가 같이 흩날리기 시작합니다. 장관이죠.

그래서 겨울이 되면 이 작품이 떠오릅니다. 주로 이 작품이 겨울에 올라오기도 하구요. 공연을 보고 나왔을 때 눈이 흩날리면 온몸에 전율이 흐르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마무리

 

이 공연은 2월 중순 이미 마무리 되었지만, 언젠가 다시 올라온다면 꼭 한 번 관람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겨울이라는 계절의 의미를 바꿀 수 있는 작품이에요. 삶에 대해 돌아보고, 우정과 사랑에 대해 돌아보고, 그리고 자신의 기억들을 되짚어 보며 그 어릴 적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 기억들이었는지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음악이나 공연이 궁금하시다면 유튜브에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검색해 보세요. 다양한 정보와 음악을 접해 보실 수 있습니다. OST도 멜론에는 몇 가지 있는 것 같네요.

 

남은 주말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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